영화 어쩔 수가 없다(2025)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냉소적 시선과 인간 내면의 도덕적 딜레마를 압축한 블랙코미디 서스펜스 드라마다. 사회적 현실 속에서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를 탐구하며, 제목 그대로 “정당화될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줄거리
시대는 2020년대 초반, 팬데믹 이후의 불황이 한창인 서울 외곽의 신도시.
주인공 장도현(송강호)은 중년의 가장이자, 한때 대기업 재무팀장이었지만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뒤 2년째 실직 상태다. 그는 아내 혜진(전도연)과 고3 딸 소희(노윤서)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생활비와 대출이 쌓이고, 딸의 대학 등록금까지 막막하다.
어느 날, 도현은 우연히 옛 동료였던 박기석(박해준)을 만난다. 그는 여전히 회사에 남아 있지만, 불법 리베이트와 회계 조작에 관여한 인물이다. 기석은 도현에게 “아무도 다치지 않아. 그냥 이름만 빌려주면 돼”라며 유령회사 명의를 제안한다. 처음엔 거절하지만, 눈앞의 현실이 도현을 옥죈다. 결국 그는 단 한 번만이라는 조건으로 서류에 서명한다.
이후 도현은 순식간에 서류상 ‘대표’이자 공범이 되어버리고,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거액이 그의 계좌로 입금된다. 그 돈으로 밀린 월세를 내고, 딸의 수학여행비를 마련하며, 오랜만에 가족이 웃는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회계 부정이 폭로되며 수사망이 좁혀오고, 모든 책임이 도현에게 전가된다.
그는 자신이 단순히 이용당했다는 걸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기석은 해외로 도피하고, 회사는 그를 “탐욕스러운 가장의 범죄”로 몰아세운다.

이때 도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당신 같은 사람들, 많아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은미(배두나) — 불법 청부 회계와 금융 조작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 그녀는 도현에게 “당신이 가진 증거를 내게 넘기면, 기석을 잡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도 무죄는 아니다”라는 냉정한 말을 덧붙인다.
도현은 갈등한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침묵해야 하고, 정의를 위해선 모든 걸 잃어야 한다.
박찬욱 특유의 묘한 유머와 불편한 현실 풍자가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도현은 끝내 선택을 하지 못한 채, 은미와 함께 증거를 넘기려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영화는 병원 응급실의 흐릿한 시점으로 전환되고, 그는 자신이 한때 남긴 ‘허위 서류’가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TV 뉴스로 듣는다.
마지막 장면, 그는 휠체어에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땐… 어쩔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 표정에는 자책과 체념,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이 교차한다.

작품 분석 및 총평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부터 박찬욱 감독의 냉정한 질문을 품고 있다.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 아니면,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뿐인가?”
이 영화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에게 스스로의 도덕적 한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박찬욱은 이번 작품에서 특유의 폭력적 연출을 절제하고, 현실적인 무력감과 블랙유머로 사회 비판을 녹였다.
실직, 가계 부채, 부패, 기업의 이면 등 한국 사회의 현실적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배치하며, 인간이 궁지에 몰렸을 때 얼마나 쉽게 윤리를 타협하는지를 보여준다.
송강호는 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그의 연기는 절제와 폭발을 오가며 “평범한 가장의 타락”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초반의 순박한 미소, 중반의 조급한 눈빛, 그리고 후반의 체념적 웃음까지 — 송강호의 얼굴은 영화의 모든 메시지를 압축한다.
전도연은 남편의 몰락을 감지하면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아내의 현실적인 고뇌를 표현했고, 배두나는 정의와 냉소 사이에 선 인물로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의 미장센은 차갑고 건조하다. 회색빛 톤, 정적이 감도는 사무실, 흐린 겨울 하늘이 반복되며 인물들의 내면적 절망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박찬욱 특유의 ‘블랙코미디적 불편함’이 살아있다.
예를 들어, 도현이 리베이트 돈으로 가족과 치킨을 시켜 먹는 장면에서 — 그는 한 손엔 영수증, 한 손엔 닭다리를 들고 미소 짓는다. 그 웃음이야말로 영화가 말하는 인간의 모순이다.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죄와 벌’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현실의 인간’에 대한 연민의 영화다.
도현은 악인이 아니다. 다만, 선으로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냉혹했던 인물이다. 영화는 그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묻는다.
“만약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 다르게 행동했을까?”

총평
어쩔 수가 없다는 웃기지도, 완전히 슬프지도 않다.
그저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씁쓸한 초상이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관객의 머릿속에는 그 한마디가 맴돈다.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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