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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품고 있는 불신, 공포, 인종 갈등 더 퍼펙트 네이버

천당옆분당 2025. 11. 13. 23:59

 

영화 더 퍼펙트 네이버(The Perfect Neighbor, 2025)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로, 평범한 교외 주택가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이웃 간 총격 사건을 다루고 있다. 감독 기타 간드비르(Geeta Gandbhir)는 이 작품을 통해 개인의 분노가 어떻게 사회적 구조 속에서 증폭되고, 제도적 방관이 어떻게 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지를 깊이 탐구한다.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현대 사회가 품고 있는 불신, 공포, 인종 갈등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20년대 미국이다. 특히 플로리다주 오칼라(Ocala)라는 지역이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이곳은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으로, 개인의 ‘자기 방어권(Stand Your Ground)’ 법이 적극적으로 적용되는 주 가운데 하나다. 이 법은 자신이 위협을 느낄 경우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해도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한다. 영화 속 비극은 바로 이 법이 가진 모순에서 출발한다. 사회가 개인에게 “스스로를 지켜라”라고 말하는 순간, 이웃은 더 이상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영화의 중심 사건은 2023년에 실제로 발생한 ‘아지케 오웬스(Ajike Owens)’ 총격 사망 사건을 재구성한다. 오웬스는 흑인 여성으로, 그녀의 자녀들이 이웃집 마당 근처에서 놀던 중, 백인 여성 수전 로린츠(Susan Lorincz)와 언쟁이 벌어진다. 로린츠는 아이들에게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고, 그 다음날 오웬스가 항의하러 찾아오자 문을 통해 총을 발사해 그녀를 사망하게 만든다. 로린츠는 ‘두려움 때문에 쏘았다’며 법적 방어를 주장하지만, 이는 지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영화는 이 사건을 단순한 개인적 충돌이 아닌, 미국 사회의 구조적 인종 불평등과 법적 모순이 낳은 비극으로 바라본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처럼 해설이나 재연 장면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실제 911 신고 녹음, 경찰 바디캠 영상, 이웃의 증언 인터뷰, 피해자 가족의 영상 기록 등을 통해 사건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건을 목격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잔인한 폭력이나 피의 장면은 등장하지 않지만, 현실의 냉정함이 주는 공포는 그 어떤 스릴러보다 강렬하다.

사회적 관점에서 더 퍼펙트 네이버는 ‘공동체의 붕괴’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웃이라는 개념은 점점 희미해지고, 울타리와 담장은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정서적 단절을 상징한다. 영화 속 사람들은 서로를 ‘함께 사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사소한 불만이 생기면 경찰이나 법을 통해 해결하려 하고, 대화 대신 신고와 고소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런 사회 구조가 결국 작은 오해를 폭력으로, 그리고 한 생명의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인종과 젠더의 교차지점을 보여준다. 흑인 여성인 오웬스는 미국 사회에서 이중적인 불평등에 놓인 인물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위협으로 인식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종종 사회적 발언권이 약화된다. 반면 백인 여성 로린츠는 ‘두려움’을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하려 한다. 영화는 이 대조를 통해 “두려움이 언제부터 폭력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감독 기타 간드비르는 언론이 사건을 소비하는 방식에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뉴스 헤드라인은 ‘이웃 간 총격’, ‘불행한 사고’라고 표현하지만, 영화는 이를 “예견된 비극”으로 규정한다. 경찰의 늑장 대응, 지역 당국의 무관심, 주민들의 무기력한 태도 등은 이미 수차례 경고 신호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사건은 터졌다.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이런 ‘침묵의 공모’를 고발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피해자의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부분이다. 그들은 분노보다 슬픔을, 원망보다 변화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오웬스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딸을 잃었지만, 이 사회가 다른 누군가의 딸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이 대사는 영화의 주제 전체를 압축한다.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사회 전체가 스스로의 책임을 되묻는 순간이다.

 

작품의 미학적 구성 또한 탁월하다. 감독은 잿빛과 푸른색이 감도는 차가운 색조를 사용해, 교외의 고요함 속에 숨겨진 불안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평범한 거리, 깔끔한 잔디밭, 정돈된 집들이 역설적으로 더 소름끼치게 느껴진다. 카메라 워크는 빠른 편집을 피하고, 느린 호흡으로 인물의 표정과 정적을 포착한다. 그 침묵 속에서 관객은 현실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결국 더 퍼펙트 네이버는 단순히 한 사건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윤리적 거울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보고서이며, 제도가 인간의 감정보다 앞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웃이 문을 두드렸을 때, 그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영화 속 인물에게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것이다.

요약하자면, 더 퍼펙트 네이버는 평범함 속의 위기, 두려움이 낳은 폭력, 제도의 침묵이 만든 비극을 정밀하게 해부한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은 현실이며, 그 현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영화는 단순히 슬픈 사건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다시 공동체와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함을 절실히 일깨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