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시(2025)는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두려움과 죄의식을 ‘귀신’이라는 상징을 통해 풀어낸 심리 공포 영화다. 단순히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불안과 세대 간 단절, 그리고 인간의 성장과 구원을 함께 다룬다. 감독은 귀신을 무섭게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억눌린 감정의 형상화’로 제시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마주하게 한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의 한국 시골 마을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은 이들이 떠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쇠락한 마을의 공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영화는 이런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귀시(鬼市)’, 즉 귀신의 시장이라 불리는 버려진 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과거 이곳에는 번성한 장터가 있었지만, 한밤중 불길한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사람들은 발길을 끊었다.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된 정민, 그는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취재하겠다는 열망으로 ‘귀시마을’의 괴소문을 쫓아간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그를 경계하고, 밤마다 들리는 종소리와 유령의 속삭임은 점점 그의 정신을 잠식한다. 영화의 초반부는 현실적인 공포보다는 심리적인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화면은 잿빛으로 물들고, 시간조차 왜곡된 듯 느껴진다.
정민은 마을의 노파 송씨에게서 20년 전 일어난 사건의 단서를 듣는다. 그 사건은 IMF 당시 일자리를 잃고 절망한 이들이 모여 만든 ‘유령 장터’와 관련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속이고 배신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결국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했고, 그 원한이 귀신이 되어 마을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공포의 근원을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의 탐욕과 죄의식으로 옮겨놓는다.
감독은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여러 장면에서 드러낸다. 정민이 취재를 이어가며 점점 광기에 사로잡히는 모습은, 마치 자신이 쫓던 귀신이 바로 자기 내면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장면이 이어지며, 관객은 어느 순간 무엇이 실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밤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마치 정민의 죄책감이 들려주는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사회적 성장이라는 주제를 공포의 틀 안에서 풀어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말의 혼란은 개인의 정신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감독은 이 시대를 “경제가 아니라 영혼이 파산한 시기”라고 표현한다. 마을의 사람들은 현실의 절망을 잊기 위해 귀신을 만들어내고, 그 공포에 기대 살아간다. 즉, 귀신은 단지 망령이 아니라, 사회적 트라우마의 상징이다.
정민은 결국 자신이 쫓던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다. IMF 당시 실직한 아버지가 바로 그 ‘귀시 장터’의 마지막 희생

자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절망적인 선택을 했고, 정민은 그 기억을 무의식 속에 억눌러 살아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는 귀신의 환영 속에서 아버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 장면은 단순한 공포의 절정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는 통과의례처럼 그려진다. 아버지는 “네가 두려워한 건 귀신이 아니라 너 자신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후 정민은 마을을 떠나며 마지막 기록을 남긴다. 그는 더 이상 ‘귀신 이야기’를 보도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다루는 기자로 거듭난다. 영화는 그가 새벽 기차 안에서 원고를 쓰는 장면으로 끝난다. 창밖에는 다시 아침이 밝아오고, 희미한 햇빛이 그의 얼굴을 비춘다. 이 장면은 공포로부터의 성장을 의미한다.

영화의 연출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하다. 카메라는 좁은 공간과 어두운 색감을 이용해 관객의 불안을 자극한다. 그러나 단순히 놀라게 하기 위한 점프 스케어나 음향 효과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적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공포를 선택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주인공 정민 역의 배우는 점점 광기에 잠식되어가는 인물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고, 노파 송씨 역의 노배우는 존재 자체만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높인다.

귀시는 결국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말한다. 사회가 급변하던 시대, 잊힌 마을과 버려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 속에 남은 상처가 만들어낸 유령 같은 현실. 공포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속내는 사회적 성장과 자아의 회복을 다루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요약하자면, 귀시(2025)는 1990년대 한국의 불안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심리적·사회적 공포 드라마다. 귀신은 인간의 두려움이자 사회의 상처이며, 주인공 정민의 여정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화해다. 이 영화는 ‘공포 속에서 성장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한국형 공포 영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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